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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를 상연하는 빅토리아 팰러스. 돔 위에는 발레리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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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표를 보니 본래 가격은 35파운드. 이나마도 시야가 어느정도 제한된 좌석이라 싼거고. 생각보다 극장은 무척 크고, 대신 좌석이 가파르게 높아지는 형태라서 앞사람 머리에 시야가 다 가리고 하는 일이 없어서 기쁨... 워낙 높이가 있다보니 무대가 가깝지는 않아도 내겐 출국 사흘전에 충동구매한 쌍안경이 있지, 하하하! 공연 내내 눈에 대고 있지는 않았고, 동작이 정적이거나 표정이나 디테일이 궁금할때 들여다봤는데 아주 훌륭했어요.

뮤지컬은,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아주 아주 좋았어요. 말하자면 감정적으로나 흐름상으로 과다 친절하다 싶은 그런 부분은 뭐, 시카고처럼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올라온 게 아니면 필연적일수밖에 없는 거 같고. 특히 안무가 좋았는데, 경찰과 시위대가 각기 다른 박자와 다른 춤으로 움직이는 게 멀리 보면 하나의 커다란 군무가 되는 거 아주 멋졌음. 그 사이로 튀튀를 입은 소녀들이 중력에서 벗어난 것처럼 날아다니고 그 한가운데서 발레가 무엇인지 서서히 배우는 소년과.

그리고 마이클! 포동포동 푸티처럼 살이 오른 통통한 팔을 휘져어가며 춤을 추고, 아무래도 패션감각이 의심되는 붉은 원피스에 핫핑크 프릴치마를 겹쳐입고, 하고 싶은걸 하라며 빌리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추는 소년.

원작영화를 보지않아 잘은 모르지만(영화관이 아니면 영화를 보지 않는-못 하는 이 성격하고는) 후일담이 있다는거 같은데 그런거 없이 뮤지컬은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못한 채 탄광으로 되돌아가고 빌리는 로열 발레 아카데미로 떠나는데서 끝이 나요. 어두운 무대에 길게 길을 비추며 헬맷에 달린 안전등은 등대처럼 빛나지만 곧 광산안으로 사라지고, 노래소리 역시 탄광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되지요. 오이, 단싱보이, 하며 자전거를 타고 홀로 마중나온 마이클의 뺨에 뽀뽀를 해주고는 또 보자, 라고 한뒤 빌리는 사라지고 마이클은 한참 동안 길끝을 보고 서있지. 그래서 동화와 같은 해피앤딩이 되지는 못 할 거라는 희미한 여운이 남아.

이날 쌍안경으로, 차츰 동작에 익숙해져가며 스스로 신기해하는 빌리의 가늘고 긴 팔근육이 움직이며 그림자가 지는걸 보며 깨달은건데 난 참 태생적인 것에 약하고나. 낮고 감미로운 음역이 넓은 목소리, 타고난 긴 팔다리. 노력으로는 절대로 어떻게 할수 없는 것들.

뮤지컬이 끝나고 민박집에 되돌아가면서, 담배를 문채 길위에서 생일을 맞았지. 열두시, 땡땡땡. 런던에서 일주일을 지내면서 이렇게 늦게 돌아온건 처음이고나.